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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현실과 가상이 맞닿은 시대의 '디지털 산수화'…장재록 개인전
2022-06-08
'자동차 수묵화' 작가, 게임 속 풍경을 한지에 먹으로 담다
"의식이 과잉된 이미지는 폭력적…무의식적 행위에 중점 두고 작업"


장재록 개인전 'The Square'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 전시장의 그림들은 전통 한지에 먹물을 묻힌 붓으로 풍경을 그렸으니 수묵산수화다.

그러나 먹의 농담(濃淡)은 균일한 농도의 중묵(中墨)과 농묵(濃墨)으로 이분된다. 먹물이 번짐으로써 단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명암 표현은 없다. 0과 1로만 조합된 디지털의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재가 된 풍경은 실제 자연도 있지만, 게임의 배경도 가져왔다. 모니터에 펼쳐진 게임 속 풍경과 자연을 찍은 사진을 구별하기 어려운 것은 이진법으로 표현된 산수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페리지갤러리에서 3일 개막한 장재록(44) 개인전 '더 스퀘어(The Square)'의 전시작들은 표현 방식과 소재 측면에서 '디지털 산수화' 정도로 불러도 될 듯하다.


장재록 'Another Act' [페리지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작가는 한지에 먼저 약 1㎝ 간격의 격자(그리드)를 연필로 그려 놓고 풍경을 스케치한다. 곡선을 배제하고 직선들로 그어진 풍경의 외곽선 안을 중묵으로 채운다. 각 사각형 안에 채워진 정도에 따라 해당 사각형을 농묵으로 칠할지 결정한다. 작가의 알고리즘을 통과한 사각형은 검거나 여백이 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장재록 작가는 이런 요소를 선택한 이유로 자신에게 명확한 경계를 가진 틀로서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머니께서 예전에 서예가로 활동하셨고 아버지께서는 토목 설계를 하셨다"며 "두 분의 작업이 이런 결과물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장재록 개인전 'The Square' 전시 전경 디테일컷 [페리지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학과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20대 후반부터 수묵화 기법으로 자동차를 사진처럼 표현해 이름을 알려왔으며 폭스바겐의 광고에도 등장했다.

수묵화 기법으로 자동차나 외국의 대도시 풍경, 샹들리에 등을 정교하게 묘사했던 장재록은 5년 전부터 격자 틀에 자연과 게임의 풍경을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재를 대표하는 풍경을 소재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자동차나 도시를 그렸던 작업과 맥락은 같다"며 지금 이 시대의 진정한 풍경은 게임의 배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예전에는 극적인 풍경을 수집하러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는데, 팬데믹 이후 외국에 못 나갔죠. 그래서 구글로 극적인 이미지를 많이 찾았죠. 그런데 알고 보니 상당 부분이 게임 속 디지털 풍경이었습니다. 가상의 이미지가 현실 이미지와 맞닿아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작가는 미국 서부개척 시대를 재현한 오픈월드 게임인 '레드 데드 리뎀션2'를 하면서 마음에 드는 풍경을 캡처해 그려왔다.


장재록 개인전 'The Square'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현실 풍경 사진으로도 작업하지만 "두 결과물을 극적으로 더 비슷하게 보이기 위해 디지털적 단순화를 적용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가상이 실제를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 실제 자연을 보고도 디지털 이미지처럼 생생하다고 느끼게 되는 또 다른 리얼리티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회화의 평면성에 주목했다고 한다.

종전의 작품들이 입체감을 부각했다면, 전시작은 픽셀(화소)을 키워 평면성을 극대화한다. 아크릴 물감 등을 섞은 먹물을 사용해 한지에서도 번지는 효과가 없어 전통 수묵화의 입체감도 드러나지 않는다. 농묵으로 채워진 픽셀들은 세필로 정교하게 경계선을 드러낸다.

아울러 그는 "풍경을 수집하고 어떻게 그릴 것인지까지는 의식이 들어가지만, 픽셀을 채우는 작업부터는 무의식적 행위"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자동차를 전면에 부각하는 등 너무 의식적으로 작업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미지 자체도 폭력적인 것 같기도 했죠. 그림이 '나 자동차야!', '나 뉴욕이야!" 이렇게 말했는데요, 이제는 무의식적 행위에 중점을 둡니다. 결과물은 조금 비가시적이긴 하지만, 관객에게 좀 더 재미와 여러 해석의 여지를 주는 거죠"

장재록의 새로운 수묵화는 디지털의 속성을 가졌지만,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자를 대고 격자를 그리는 것부터 한지를 배접하는 것까지 모두 작가의 손을 거쳤다.

KH바텍이 운영하는 비영리 전시공간 페리지갤러리가 40대 작가를 소개하는 '페리지 아티스트' 28번째 전시로 7월 30일까지 열린다.


장재록 개인전 'The Square' 전시 전경 [페리지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출처: 연합뉴스(https://www.yna.co.kr/view/AKR20220604022400005?in...)